"윤 차장님, 오늘 2차 가십니까 2차?"
"어휴, 아냐. 요새 몸이 영 아니네. 큰일이네 큰일이야 하하"
"아이 참, 차장님 가시죠? 김 부장님도 가시는데"
"그래, 윤 차장, 가지?"

하지만 윤 차장은 오늘도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고개를 젓는다.

"다들 아침에 늦잠자도 깨워주실 분 있는 분들이랑 제가 같나요? 하하하, 죄송합니다, 오늘도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부장님 죄송함다!"
"아녀, 그려, 기러기 아빠, 화이팅!"

적당히 웃는 낯으로 2차 유혹을 빠져나온다. 마침 언제나처럼 1차만 가볍게 때우고 돌아서는 윤희씨와 민정
씨가 함께 걷는다.

"아, 차장님 기러기 아빠셨어요?"

얼마 전 인턴이 풀린 윤희씨가 몰랐다는 듯 묻는다. 윤 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아 진짜 애들 교육이 뭔지. 힘들어 힘들어. 증말 힘들다니까"

그러자 민정씨가 그래도 위로하듯 그를 추켜세운다.

"그래도 정말 가정적이세요. 보통 기러기 아빠들, 아무래도 혼자 있다보니까 외로워서 그런지 엉뚱하게
막 탈선하는 분들도 많은데 차장님은 정말 어쩜, 정말 바른 생활 사나이세요"
"아 요즘에는 나쁜 남자가 인기라며? 바른 생활 사나이면 인기 최악이네?"
"아 유부남이시잖아요!"

까르르 웃는 윤희와 민정. 그녀들과 반쯤 농담 따먹듯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먹자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그녀 둘은 집이 같은 방향이라며 택시에 올라탄다. 윤 차장은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준다.

"흠"

그리고 입가에 아직도 지우지 못한 함박 웃음을 그제사 지우며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아, 박지성 상무님. 예, 전에 한번 신세졌는데, 오늘 또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네네, 아,
그래요? 아아, 이야. 그럼 완전 잘 됐는데요? 하하하, 네, 그럼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 "다녀왔어" 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된 것은. 불 꺼진 텅 빈 집 안에 공허하게 울리는
 그 한 마디가 가슴에 비수가 되어 다시 꽂히게 된 이후로 그는 퇴근길에 항상 입을 닫았다.

"응, 지금 퇴근길이야. 금방 들어갈께. 어어, 뭐 사갖고 들어갈까? 먹고 싶은거 있어?"

버스 앞 자리에 앉은 어떤 남자의 퇴근 전화를 들으며 새삼 갑자기 우울해지는 것도 하루 이틀. 홀로
기다리는 이가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어 괜히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일 아닌 일을 하게 된 이후
부터 그는 겨우 그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처음에는 좋았다. 언젠가부터 잠자리조차 서로 기피하게 된 섹스리스 부부. 하루에 단 한 마디를 나눌
일 없어진 아들… 외로웠다. 그래, 이미 기러기 아빠가 되기 전부터 그는 외로웠다. 차라리 아내와 자식이
떠나버리자 근 십여년만에 찾아온 독신의 자유는 해방의 기쁨에 가까웠다.  

사실 처음에는 그 해방감이 너무나 좋아, 기러기 아빠들의 고독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저, 부부의
정이 깊은 부부들이나 느끼는 허전함 같은 것이라고만 막연히 느낄 따름이었다.

샤워를 하고 알몸으로 털레털레 나오고, 주말 밤 알몸으로 맥주와 함께 볼륨 높게 영화 채널을 마음껏
보고, 혼자 만원어치 삼겹살을 사서 원 없이 먹어보고…

그리고 그때 느꼈다. 자기는 자유를 줘도 딱히 뭘 할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도대체 총각 시절의 나는
뭘 하며 놀았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고, 친구들이라고 해봤자 연락하는 놈도 몇 놈 없었다. 그제서야
중년의 자신을 처음으로 돌아본 윤기태는 갑자기 몰려온 외로움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가끔, 문득, 갑자기, 이유없이 혼자 방에 누웠다가 우뚝 그것이 솟았을 때, 그는 '소년의 윤기태'처럼
손으로 그것을 해결했다. 하지만 18세의 윤기태와 38세의 윤기태가 느끼는 자위 후의 자괴감은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차이가 있었다.

아니 자괴감보다는 분노에 가까운 어떤 감정이었다. 왜.

홀아비도 아닌 내가 왜 홀아비처럼 살아야 하는가. 멀쩡히 마누라 자식까지 다 있는 놈이 왜 혼자 주말
밤에 딸딸이로 분을 삭여야 하는가. 그리고 몰려오는 외로움은, 2~3일, 그나마도 언제부턴간 일주일에
한번 꼴로 겨우 이국 만리에서 걸려오는 지친 아내의 목소리로 달래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솔직히 회의가 컸다. 이렇게까지 하면 확실히 내 아들이 성공하기는 하는가. 그리고 아들의 성공을 위해
내가 이렇게까지 희생을 해야하는가. 그 보답은 과연 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아내는 정말 그 긴 밤을 어떻게 보내는가.

기러기 엄마들의 탈선 뉴스들을 종종 접하면서 '설마' 하고는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램일 뿐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집 대출금 이자 등 필수 경비를 제외한 월급의 거의 전부를 송금하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무엇인가, 최소한의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아니아니 솔직하게 까놓고 말해서…

여자가 고팠다. 그래, 여자가 고팠다. 나름 착실하게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다. 남 부럽지 않은 기업에
취업해서, 적당한 여자랑 결혼해서 아들도 낳고, 꾸준히 연차에 맞춰 승진하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그런 그 자신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늦은 밤 혼자 사무실에서 일하던 그에게 문득 강렬하게 다가온 일탈의 충동. 그래, 일탈. 그리고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 그리고 바로 인터넷 검색, 전화 한 통화와 함께 시작된, 작지만 큰 일탈.



"옵빠"

사무실의 민정과 닮은 다정이의 애교에, 윤기태는 참을 수 없는 강렬한 성 충동을 느꼈다.

"아우"
"왜에 오빤 내가 그렇게 좋아?"
"어, 우리 사무실에 너랑 비슷하게 생긴 애가 하나 있는데…아, 이런 말 하면 서운한가?"

하지만 다정은 고개를 흔들며 웃는다.

"아니, 근데 그 기집애가 더 이뻐 내가 더 이뻐?"
"비슷하게 생겼다니까?"
"그래두. 그럼 이거는 누가 더 커?"

다정은 기태의 손을 잡아다 자신의 풍만한 가슴 위에 얹고선 그렇게 묻는다. 기태는 그 가슴을 부드럽게
주물럭거리며 웃고는 답한다.

"아유아유, 아 이거야 당연히 우리 이쁜이에 비할 바가 아니지. 걔는 절벽이야 절벽!"
"아하핫!"

사용자 삽입 이미지



머리가 멍하다. 술을 계속 마시고, 아랫도리를 빨리우고, 비벼대고, 문지르고, 농담을 주고받고, 핑핑 돌고
흐려져가는 눈 앞에 잠은 쏟아지고, 가슴을 물고 빨고, 이윽고 반쯤은 만취한 상태로 장소를 바꿔 그녀 위에
올라타고, 평소답지않은 더러운 말과 욕설들을 쏟아내며 절정을 맞이하고…

"크하하"

물 뺀 이후에는, 그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미안해…" 라는 말을 주억거리며 그녀의 젖가슴 속에 얼굴을
파묻고 용서를 빈다.

"안녕히 가십쇼"
"자알 놀드아 감돠! 박쥐성 쌍무뉨"

돌아오는 택시 속에서 울리는 전화벨. 아내의 전화임을 알지만 오늘만큼은 의도적으로 모르는 척 받지
않는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불조차 켜지 않은 채로 양치조차 하지 않은 채 바로 침대에 누워, 다만 최후의
보루로 언제나처럼 알람 시계 두 개만 맞춰놓고 그렇게 떠지지 않는 고단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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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2 01:07 2012/05/02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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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그냥, 아 은경아…"
"됐거든? 너도 그냥 다른 남자애들이랑 똑같애. 어쩜 그거 밖에 몰라?"
"아니 그냥…"

기태는 은경의 신경을 건드렸다는 생각에 조금 초조하기도 했지만, 짜증도 났다. 간만에 분위기도 좋고
날씨도 후덥지근하니 이대로 어영부영 까페에서 시간이나 때우다 들어가기 보다 모텔에서 그거나 좀
하다 들어가면 지도 좋도 나도 좋은거 아닌가?

하지만 은경은 기태가 모텔 가자는 말을 꺼내자마자 "어째 니가 그 소리를 안 하나 했다" 하면서 비아냥
거리더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태가 한번 더 졸라보자 그때부터 정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내심 짜증도 나고 초조하기도 하고 그러던 차에 은경은 기태에게 카운터를 먹였다.

"나 진짜 너 이런 식으로 하면 못 만나"

솔직히 기태는 되묻고 싶었다. 아니 뭘 내가 어쨌다고? 거의 2주일만에 만난 여친에게 자자고 말도 못
꺼낸단 말인가. 아 물론 은경의 마음도 이해는 해줄 수 있다. 은경은 은경대로 2주만에 만난 남친과 거
간만에 데이트다운 데이트 좀 하나했더니 그거나 하자고 하는 판에 마음 상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색을 할거는 다 뭐냐. 남자들 다 그런거 아닌가. 아 그리고 정말로 그거는 좀 아니다
싶었으면 싫다고 말하면 뭐 한두번 더 삐대보다 관둘거 당연한데 거기서 만나니 못 만나느니 그런 소리를
해대니 기태는 기태대로 짜증이 난 것이다.

"아 뭔 그런 소리를 해"

자기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은경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나 갈래"
"하 진짜"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 이게 은경을 제대로 건드렸다. 발끈한 그녀가 정말 진심으로
집으로 향한다. 기태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아 은경아 야" 하고 말했지만 은경은 거세게 팔을 뿌리
치며 마침 다가온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떠났다.

"하 씨발"

떠나가는 택시를 보며 허리춤에 손을 얹은 기태는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기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길거리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엄청난 쪽팔림과
그 몇 배의 짜증이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에이 개씹빨!"



씩씩대는 콧김을 겨우 주체하며 기태는 홍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홍성아, 저번에 거기 그,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냐?"

전화를 걸자마자 대뜸 묻는 소리에 어벙벙하던 홍성의 "뭐?" 하는 얼빠진 대답이 돌아왔지만 역시
눈치 빠른 새끼답게 곧이어 "잠깐만" 하더니 자리를 옮긴 모양인지 잠시 후 다시 물었다.

"어디, 저번에 거기? 야구장?"
"어. 그, 좋은 데라며 니가 가자고 했던데, 그, 풀싸롱"

전화기 너머로 씩 웃는 홍성의 표정이 마치 보이기라도 하는 듯 하여 기태는 조금 머쓱했지만 곧
철판을 깔기로 했다. 불알 친구 사이에 부끄러울게 뭐 있는가.

"야 니가 왠일이냐? 죽어도 안 간다며? 뭐, 은경이랑 깨졌냐?"

역시나 존나게 촉이 좋은 새끼답게 곧바로 핵심을 찔러왔지만, 아무리 흥분했다 한들 그런 것까지
보고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 기태는 그냥 둘러대기로 했다.

"그냥, 간만에 제대로 함 뜨고 싶어서 그래. 거 얼마랬지?"
"일찍 가면 스물 일곱장. 왜 오늘 가려고?"
"그래 임마"
"야 그럼…아 씨 난 오늘 잔업인데. 특근이라서 난 못 가"
"아 누가 너보고 오래? 걍 번호나 불러"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큭큭대던 홍성이 "알따, 번호 불러줄께. 박지성 상무라고, 잘해주는 형님 있어.
솔직하게 초짜니까 잘 가르쳐달라고 하면 룰부터 해서 뭐 잘 설명해줄테니까 그리 말해. 괜히 허세
부리다가 어버버 거리지 말고. 번호 문자로 찍어주면 되지?" 하고 말을 쏟아낸다.

"어 알았어"

일단 전화를 끊고 잠시 후 [ 재밋개ㅔ 놀다와라. 담에 같아 가자 ] 라는 오타 많은 문구와 함께
01049645945 번호가 찍혀왔다. 새삼 이제와서 조금 떨리기도 했지만, 그리고 '홧김에' 이러는게
은경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까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니 번호가 절로 눌러졌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 홍성의 카톡이 날아왔다.

[ 멍심해라, 가서 걍 정신줄 놓고 남ㅈ답개ㅔ 하고 싶은거 다 하 서 놀거 와. 글타거 곤조 부리지논
말고. 아란냐? 기태 화이팅~ㅋㅋㅋ ]

새끼 하여간 손가락도 오질라게 굵은 새끼. 오타는 존나게 많다. 그래도 왠지 고마웠다.




"…아가씨들 보여드리면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언니 딱 찍어다가 초이스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에 딱 이 여자다 싶은 언니가 없으시면 한 조 더 보여드립니다. 그래서 초이스하면 인사 전투
새끈하게 한판 땡기시고 이어서 무한으로 양주 맥주 싹 다 드시면서 한 시간 반 동안 신나게 노시고
전투 한 방 더 하고 이제 방에 가서 또 화끈하게 본 게임 즐기시면 됩니다. 궁금한거, 이거 에라다
싶으신거 있으시면 항상 말씀해주시구요. 그럼 언니들 입장하겠씀다"

기태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후우, 이거 뭐 첫 경험도 아닌데, 아니 그래 뭐, 풀싸롱은 처음이지.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떨려왔지만 새삼 배짱을 부리기로 했다.

'놀다가는거지 뭐'

아가씨들이 우루르 들어왔다. 내가 고르는대로 저 중에서 아무나 지금 나랑 떡을 치는거지?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게, 아니 정신이 혼미해지게 행복해졌지만 어쨌거나 잘 골라보자. 되게 도시적이고
도도하게 생긴 애부터 확 꺾어버리고 싶게 진짜 쎄보이는 애, 귀염상인 애, 에이 얜 뭐야 싶은 애,
가뜩이나 가슴도 엄청 크면서 깊게 패인 옷 입은 애, 늘씬하게 생긴 애, 회사의 현지 대리랑 존나
똑같이 생긴 애, 상큼하게 생긴 귀염둥이까지… 다들 키고 크고 늘씬하고 육덕지고 이쁘장 하니
갑자기 급 흥분도 되었지만 기태는 기냥 눈으로 그녀들을 그렇게 한번 슥 훑자마자 바로 그 중에
가슴 큰 애를 찍었다.

"너"

너무 빠른 초이스에 다들 순간 벙찌는 분위기였지만 '소원'이라고 자기 이름을 밝힌 그녀는 활짝
웃으며 "오빠 보는 눈 짱이다" 하면서 기태에게 다가왔다.

"좋은 시간 되십쇼"



기태가 초이스한 소원이는 벌써 가슴 사이즈부터가 은경과는 비교도 안되었다. 그 화끈한 빨통에
바로 꽂혀서 그녀를 지명한거다. 어차피 놀다 가는거, 제대로 시원하게 놀다가기로 한다.

"오빠 디게 잘 생겼다. 오늘 내가 진짜 잘 해줄께. 오빠 단골 만들어야겠다"
"그래"

바지춤을 벗기는 소원이의 손길에 벌써부터 불뚝불뚝 가슴이 주체못하게 뛰는데 소원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기분 좋은 향수 냄새에 긴장되던 마음이 조금 이완되며 긴장이 흥분으로 바뀌어 간다.

슬쩍 팬티가 벗겨지며 조금 시원해지고, 곧이어 뜨끈하니 기분 좋은 쾌감이 아득하게 허리 아래에서
퍼져나가고, 그 와중에 또 갑자기 은경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여전히 울릴 줄을 모르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기태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차가워진 얼굴로 그저 자신의 사타구니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매력적인 소원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쥐며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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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2 00:26 2012/04/2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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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상무의 강남 야구장(74)] 서바이벌 에서 이어지는



"허, 이야, 너 진짜 맛있다"

최상목의 칭찬(?)에 경미는 여전히 그의 위에서 왕복운동을 계속하며 기분좋은 듯 미소를 띄어보이며
말했다.

"그럼 오빠, 내가, 이 일로, 먹고, 사는데, 아니면… 안 되지"
"아냐아냐, 이게…음, 잘한다고 맛있는게…아니란 말이야. 잘하는거랑, 맛있는건, 다른데,
넌… 둘 다… 괜찮네"
"증말? 아…오빠 잠깐만 잠깐만, 말 시키지 말아봐 오빠 아…"

이미 둘 다 한창 하이라이트로 올라가는 중이라 묘하게 대화가 이어졌지만, 한창 정신이 아랫도리로
팔려간 상황에서 나누는 대화야말로 참으로 맛있는 대화인지라, 말보다 몸으로 격렬하게 대화하다 곧
지릿지릿한 단말마를 토해냄과 함께 그 즐거운 육체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 볼일 다 보셨음 내려오시지 말임다? ]

주 대리 이거… 이거 토낀가? 뭘 벌써 나오라고 그래. 뭐 그래도 자기도 일단 싸기야 쌋고 먼저 빨리
내려와 할 이야기 하자고 한건 자기인만큼, 최 대리는 꼭 시간 풀타임으로 채우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괜히 얼마라도 더 있으려고 밍기적 대는 손님들만 보다가 쿨하게 갈 준비하는 최상목을 보며 경미는
가슴을 풀어 헤친 채 말했다.

"오빠 되게 센스있네?"
"뭐가?"
"쿨하게 바로 안 밍기적대고 일어서는거"
"나 바쁜 사람이야"
"히, 바쁜 사람이 이런데 오냐?"

최 대리는 경미의 가슴을 한번 더 만지작 거리고는 말했다.

"바쁜 사람이니까 여길 오지, 안 바쁜 사람은 연애하겠지"




"아 뭘 그렇게 빨리 내려오라고 성화야? 응?"

홀로 내려와있는 주 대리를 보며 최 대리는 웃으며 말했다. 주 대리는 담배를 하나 건내며 말했다.

"아 저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왜? 뭐 하자마자 해버렸어? 토끼야?"

'토끼'라는 말에 은근히 발끈한 듯 했지만 표정을 잘 관리한 주 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까 술을 너무 마셔서 그러나 아님 밑에 있을 때 아라 고 기집애가 인사 전투에서 너무 제대로
해서 그랬나 아 갑자기 이게 안 되지 뭐에요"
"뭐? 증말? 햐… 아니 갑자기 왜 그래?"

최상목은 갑자기 담배 맛이 확 땡긴다는 듯 한 모금 깊게 빨고는 물었다. 주 대리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 아까 양주만 들입다 마셔서 그런가"
"여튼 그래서? 걍 바로 나왔어?"
"아니요, 간신히 세우기는 세웠는데 그냥 아…"
"왜?"
"아 그냥요 그래서 입으로 해서 세웠는데 또 너무 이거 왜이래? 하면서 초조해하다 급하게 급발진
하느라 확 그냥…"
"으하, 진짜? 아이고, 우리 주 대리 이거 클났네. 잘 놀고 잘 하는 주 대리 이거 명성에 흠가겠어?"

최 대리의 놀림에 주 대리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였다. 그리고는 다시 표정을 진지하게
하고는 아까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최상목에게 보여주었다.

"잘 나왔죠"
"어 잘 나왔네"

오늘 최상목이 오 부장과 주 대리를 데리고 야구장을 찾은 이유는 '확증'이었다. 최 대리는 하루라도
빨리 지옥같은 영업부를 떠나고 싶은데, 문제는 갈 곳이 없었다. 지랄맞은 한 부장에게 하도 깨지는
모습을 여기저기 보이다보니, 솔직히 억울하게 깨진 것이지만 어쨌거나 주변 유관 업무팀으로는
낯이 팔려서 가기가 지랄맞았다.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다른 팀으로 가자니 누가 불러주겠는가?

'씨발'

비벼볼 언덕은 그래도 자기 데리고 있었던, 그리고 그 당시 제법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어 자기에게
좋은 기억을 갖고 있을 오 부장 하나 뿐인데, 2년 전처럼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영업부에서
총무부로 점프하는게 어디 쉬운 일도 아니고 모양새도 딱히 좋지가 않을 것이 분명하던 차에…

바로 그 총무팀 오 부장이 이번 임원 승진 대상자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임원급이 되면
슬슬 자기 사람 주변에 채워넣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니, 만약 오부장이 임원이 되고 또
자기를 불러주는 그림이 된다면 최상목의 입지도 단번에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총무팀
으로의 컴백 점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모양새가 된다. 그래서 최상목은 오 부장의 심복이
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다만 그거야 최상목의 일방적인 기대일 뿐이니 먼저 다시 오 부장와의 친분을 되살리고, 또 '우린
한 배를 탄 사람'이라는 어떤 확고부동한 증표를 찾고자 그는 오 부장과 주 대리를 데리고 여기
야구장에를 왔다.

그리고…

한창 술이 올랐을 무렵, "이렇게 즐거운 날 우리는 이제 형 아우 하는거 어떻습니까 부장님?"
하면서 오 부장 기분을 맞추고는 그렇게 주 대리와 함께 셋이 폭탄주를 마셔가며 '인증샷'
까지 찍은 것이다. 주 대리의 폰카로 찍은 셋, 아니 옆에 오 부장이 소라를 끼고 찍어서 넷이
찍은 사진은 누가봐도 적나라한 풀싸롱의 모습이었다.



"아흐 취한다…"

오 부장의 그렌저XG는 대리운전 기사가 운전하고, 조수석에는 주 대리가 앉았다. 뒷 좌석의
오 부장과 최상목은 알딸딸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정말이지 오늘 진짜 잘 놀았어. 고마워 최 대리? 응?"
"아휴 아닙니다. 제가 진즉에 이렇게 모셨어야 되는데,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아냐아냐, 그래도 큰 돈 쓰는건데, 고맙지 나야"

오 부장은 그렇게 툭툭 최상목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창 밖을 바라보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묘한 말을 했다.

"오늘 같이 찍은 사진들은, 뽑아서 인화라도 해서 집 액자에라도 걸어놔. 응?"

순간 주 대리와 최 대리는 무어라 해야할지 답이 궁해졌지만 곧 오 부장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휴, 어휴. 그 맘 다 이해해. 둘 다 얼마나 내가 야속했겠어. 특히 주 대리"
"아닙니다, 어휴 아닙니다"

최 대리와 주 대리는 왠지 뻔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짓을 했다가 걸린 중고딩 마냥 민망했지만
오 부장은 그런 그들을 달래었다.

"아냐 솔직히 나도 그런 생각 많이 했어. 지난 번에 한번 미끄러지고 나서 생각을 했는데, 참
내가 여기까지 오면서 그래도 나름 아둥바둥 오기는 왔다면 언제부턴가 군기가 빠져서 대충
살다보니… 다 그게 마누라고 애새끼고 미국 가 있으니까, 아 남자가 그렇게 되잖아? 여튼,
그렇게 몇 년 보내니까 내가 참 주변 관리도 못했더라고"

주머니 속의 손수건을 꺼내어 입가를 닦은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니 진짜로 내가 회사에서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이 아예 없는거야 아예. 원래 뭐
이 자리쯤 오면 외롭다 외롭다 하긴 하는데 외로운걸 떠나서 뭔가 인맥 관리까지 제대로 못한
그런 거 같더라구. 아 그리고 주 대리만 해도, 지난 번에 나 얼마나 도와줬어? 근데 요 며칠새
생각해보니 내가 해준게 없더라구. 미안해 주 대리"
"아닙니다 부장님"

그리고는 다시 최상목을 향해 말했다.

"주 대리가 내 오른팔이 되어줬다면, 우리 최상목 대리는 이제 내 참모, 머리가 되어줬으면 해.
응? 그래가지고, 이제…뭐, 내 경쟁자도 영업팀의 한 부장이지만, 아 최상목 대리는 한 부장
사람이 아니잖아?"

오 부장의 말에 최 대리는 그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아휴 암요. 제가 원래 누구랑 절대 척을 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근데 그런 제가 아예 앙심을
다 품은 사람이 딱 둘 있는데 그건 제주도 출신 제 군대고참 권순기고, 다른 하나는 우리 영업
2 부장 한만홉니다. 아 까놓고 말해서 군대고참이야 그렇고 그런거지만 아 오죽하면 회사 상사
한테 이런 앙심을 다 품겠습니까? 아효, 한만호 개새끼 진짜 아오 한만호 개새끼!"

최상목의 말에 오 부장은 물론이요 주 대리까지 껄껄 웃었다. 오 부장은 그런 최상목을 술냄새
풀풀 풍기는 몸으로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는 한 배 탄 사람들이야? 어? 알았지? 오늘부턴, 아까 그 사진 찍을 때도 말했잔하.
우린 이제 하나, 어? 형 동생이야 형 동생"
"어유 저희 그럼 오늘 도원결의한 겁니까? 강남야구장 풀싸롱에서 도원결의? 응? 캬, 좋구만!"


…그렇게, 술 냄새과 썰렁한 아부와 서로간의 계산이 맞물려 돌아가는 세 남자의 결의는 그렇게
새삼 다져졌다.

'이제부터 진짜 임원 승진 전쟁이다'

오 부장 역시 방금 전의 취한 얼굴은 어디갔는지 곧바로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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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5 03:43 2012/04/05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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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상무의 강남 야구장(69)] 오 부장의 야망 에서 이어지는


"간만이다?"

대영 그룹 본사 사옥 33층 옥상. 원칙적으로는 건물 전체가 금연 건물로 지정되어 아무도 담배를 피워
서는 안되지만 테헤란로를 바라보는 방향의 한쪽 측면은 아직까지 사실상 흡연구역으로 남아있다.
춘곤증 때문에 하도 잠이 쏟아지자, 주 대리는 잠시 잠도 깨고 머리도 식힐 겸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런 그의 등을 툭툭 건드린 것은, 지금은 영업 2팀에서 일하고 있는 과거의 사수 최상목 대리였다.

"어이구, 선배님"

주 대리는 최상목 대리를 확인하자마자 목례를 하며 인사했다. 과는 달랐지만 학교 선배이자 전 사수이다
보니 주 대리는 그를 줄곧 '선배'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최상목 대리는 "갈수록 훤칠해지네?" 하면서 너스
레를 떨었다.

"어휴 훤칠해지기는요. 배만 나오는데요. 요새 잘 지내시죠?"

…이후 몇 마디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던 둘. 그러나 최대리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위한 제안을 한다.

"마침 점심시간 다 됐는데, 따로 밥 먹으면서 이야기 좀 할까?"

주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에서 이제 너는 그냥 그야말로 오 부장 심복이야"

그런가… 딱히 나쁠 것도 없지만 기왕이면 좀 간지나는 상사를 위에 두고 싶은데. 어쨌거나 그런 이미지
란 말이지… 최 대리는 카레라이스를 한 스푼 뜨면서 말을 이었다.

"딱, 총무팀의 주 대리, 하면 그냥 오부장하고 풀싸롱 야구장이 떠오른단 말이야"
"에~이, 오 부장님까지는 몰라도 야구장은 진짜 너무 오바다. 에~이, 그건 아니죠. 에이에이"

최상목도 솔직히 좀 오바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그래, 그건 오바다. 여튼 말이야, 넌 어쨌든 오부장 옆에서 딸랑이 흔들어주면서 수고 몇 번
해줬잖아. 니가 꼭 해야될 일도 아닌데. 절박한건 임원승진 바라는 오부장이지 너가 절박한거냐?"

'딸랑이'라는 표현이 조금 좀 거슬렸지만 그리 틀린 말도 아니고, 어쨌거나 고개 끄덕이면서 듣노라니
그 다음 질문이 주 대리 가슴에 와서 박혔다.

"근데… 그런 오부장이 너한테 해준게 뭐가 있냐?"

오부장님이 나한테 해준거라…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그냥 부장님하고 좀 친해지면 두루두루
좋겠거니 생각했고, 같이 야구장 따라가서 공짜 떡도 몇 번 쳤으니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생전
말 한마디 같이 나눠볼 일 없는 우리 회사 최고 임원들하고도 놀아봤고.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망설이고 있노라니 최 대리가 다그치듯 물었다.

"생각해 봐. 그래, 오부장이 잘되면 혹시 또 몰라. 근데, 만약에 오부장이 이번에도 임원 승진 안되고
미끄러지면, 오부장은 나가야 돼. 임원 도전 두 번 미끄러진 사람을 어느 회사가 껄끄러워서 데리고
있어? 자기가 부끄러워서라도 나가야지. 그리고 그럼 다른 사람이 그 자리 들어올텐데, 전임 부장의
심복이라고 불린 사람이 떡 자기 팀에 있으면 곱게 보이겠어? 뭐 그래봐야 우리 같은 말단 대리한테
인사 장난질이야 치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좋을거 없단 말이지. 근데, 그런 부담을 안고 돕는 사람한테
너 뭐 제대로 확실하게 보상받는거 있냐 지금? 그리고 오 부장이 뭐, 임원되면 너한테 뭐라도 챙겨준
다고 약속한거 있어? 말로만 뭐 우리 라인 어쩌고 이런거 말고 말이야"

그런 것도 챙겨야 하나… 그제서야 순간 주 대리는 자기가 너무 깊이 들어온 것은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났다. 그냥 뭔가 자기 눈 앞에서 영화 속에서나 보던 '사내 정치' 같은 것이 돌아가는 것 같고,
같이 야구장 가서 치는 맛난 공짜 떡 몇 번에 들떠 있었을 뿐 아차하면 그게 부메랑이 되어 엄한
자기가 유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 따위는 해본 적이 없었다.

"허…그런 것은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주 대리의 솔직한 말에 최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일단, 오 부장이 나가리 된 이후의 이야기는 둘째 문제야. 거기부터는 사실 우리가 손을 쓰려고
해도 할 여지도 없고. 끽해야 오 부장이 잘 되도록 돕는 정도가 한계지"
"음"

최상혁이 '너'가 아니라 '우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서 주 대리는 이미 최 대리 역시 자신과 함께
오 부장이라는 이름의 한 배를 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랬군. 도대체 왜 최 대리가 이런 조언을
하나 했더니만. 어쨌거나 다시 최 대리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 부장이 잘 된 이후, 그러니까 임원 승진이 된 이후에 우리를 챙겨야 할 부분은 확실히 챙겨
야지. 안 그래?"
"음, 그렇죠"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 라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최 대리는 가슴 팍 안쪽 명함 지갑에서 강남
야구장 박지성 상무의 명함을 꺼내보였다.

"오늘, 오 부장님이랑 같이 가기로 했어. 내가 쏘는 걸로. 뭐 이래저래 신세 진 것도 있으니까.
같이 가자. 내 영업부로 날아가면서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인수인계조차 제대로 못하고 그렇게 되서
좀 많이 미안한 것도 있었으니, 오늘 특별히 너까지 쏜다"
"오오?"
"그리고, 여기에서 바로 그 '보장'을 받아낼거야"

주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양반이 내 사수로 있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럴 때는 확실히 '선배'
다운 데가 있는 양반이다.

'어쨌거나 또 공짜 떡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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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7 23:52 2012/03/27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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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음"

블라인드를 안 치고 잤더니 창문으로 쏟아져들어오는 따스한 봄볕에 눈이 부셔서 그만 눈을 떴다. 더듬더듬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 겨우 10시다. 더 잘까 했지만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아 속 쓰려"

누군가에게는 아침 느즈막한 시간에 햇볕 쏟아지는 침대에서 깨어나는 것이 꿈같은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라에게 있어서는 그저 짜증나는 일일 뿐이다. 그냥 그녀는 블라인드에 암막 커튼까치 치고 푹 자다가
한 오후 3시쯤 어두컴컴한 방에서 "잘잤다!" 외치면서 깨어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꼭 드라큘라 같네'

문득 그 생각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지만 밤일하는 사람이 다 그렇지. 그래, 드라큘라 맞지 뭘. 쨍쨍한
봄날 햇볕만큼 짜증나는 것이 없다. 차라리 한 여름 같으면 창문 살짝 열고 커튼 치고 에어컨 켜놓고
자면 시원하기라도 하지 이건…

"으"

꼬륵- 하는 소리와 함께 배고픔과 속쓰림, 또 한편으로는 똥까지 마려웠다.

'뭐부터 할까'

10초간 고민했지만 아랫쪽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그래, 아랫쪽부터.


[ 나눈 지금 퇴근하다 잔냐 ]

변기에 앉아 담배를 뻐끔 피우며 휴대폰을 확인하노라니 새벽에 호구 노총각 아저씨가 보낸 문자가
한 통 와 있다. 아직도 투지 폰을 쓰는 리얼 아저씨다. 나 좋다고 완전 반했댄다. 하, 웃음이 절로
나온다. 농사 짓다가 장가 가려고 서울로 상경해서 낮에는 공장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 한다는데
그런 형편에 야구장을 들낙거린다.

'뭐 어때. 남자가 그건 풀고 살아야지'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해서 번호를 가르쳐줬더니 수시로 문자질이다. 귀찮긴 해도, 그냥
요새 그… 이름도 생각 안 나네. 그 바람둥이 웨이터 개새끼랑 깨진 이후로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
남기는 놈은 그저 우리 박지성 상무 하나 뿐이라 토 나오게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친구하지 뭐, 손님 친구'

이런 호구들도 있어야 장사가 되는 법이지. 어… 왠지 정말 없는 사람 홀려서 돈 빨아먹는 드라큘라
같은 년이 되는 거 같아서 기분 나쁘지만 아 누가 오라고 했나? 지가 오는거지? 그리고 난 잘해줬는
데. 맞어. 얼마나 서비스 잘해줬는데.

묻지도 않은 지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는데 은근히 사정도 딱하고 해서 올 때마다 서비스 잘 해줬더니
맨날 지명해주고, 또 같은 밤일(?)하는 사람이라 마음을 아는지 저번에는 왠 또 홍삼 팩을 선물 한
박스 가져왔다. 그런거 태반이 중국산이라고 먹지 말라는 정은 언니의 소근거림에 그걸 또 시골 사람의
밝은 귀로 듣더니 "아 정관장 몰라 정관장?" 하면서 펄펄 뛰는데 확실히 먹고 나니 그 다음 날은
속이 덜 쓰린 듯 하여 고맙게 잘도 마시고 있다.  

[ 아 문자가 그게 머야 맞춤법 다 틀려서 아저씨처럼 왜 그래 ]

답장을 보내면서 왕건이가 뱃 속에서 쑥 빠져나간다. 아, 시원하다. 바로 냄새나기 전에 물 한번
내리고, 오늘 간만에 변비 탈출이다. 아 속이 다 후련하네. 피우던 담배를 끄고 이제 비데를 하며
오늘 할 일을 생각해본다.

'빨래 맡긴 거 좀 찾아오고…방 청소도 좀 해야되는데. 그리고, 이따가 출근하면서 네일 받고, 머리
하고… 아 삶이 너무 재미없네'

바로 옷 훌훌 벗어던지고 샤워하면서 생각한다. 하긴 저번에 정은 언니가 그랬다. 자기는 매일매일이
똑같은 것 같다고. 무슨 일을 해도 그게 어제 한 일인지 지난 주에 한 일인지도 헷깔린다는거다. 저번
에는 심지어 네일 받으러 가서 왠지 기억이 가물가물해 거기 언니한테 "나 오늘 여기 며칠 만에 오는
거에요?" 물어봤더니 당황스러워하면서 "어제 오셨었는데요" 하더랜다.

그 정도면 좀 심각한 건망증이지만 사실 나도 곧 그리 될 거 같다. 그래서 치매 방지책으로 휴대폰에
고스톱 받아서 몇 판 했는데 머니 좀 모을만 하만 다 쓸리고 쓸려서 혈알 올라서 관뒀다. 아, 어쩌면
돈 못 모으는건 게임이나 현실이나 그렇게 똑같냐. 난 진짜 만약에 시집가면 돈 관리는 그냥 남편에게
맡겨둬야 돼…. 물론 정말로 그럴 생각은 절대 없지만. 난 쓸 거 쓰고 살아야 돼.


씻고 나와 방부터 정리한다. 요 며칠 째 옷을 그냥 막 벗어제껴서 방이 엉망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적당히 '정리 안 하고 사는 기집애 방' 정도지만, 가끔 일하는 언니들 이야기 들어보면 미친 년들도
종종 있단다. 방에서 쥐가 나와도 안 이상할 정도로 엉망진창으로, 과장이 아니라 완전 말 그대로
쓰레기장을 만들어 놓고 사는 년들. 소라 언니도 그 이야기 들으면서 그랬다.

"이 중에 그러고 사는 년이 몇 년인지 몰라. 게으르고 지저분한 년들 많어 진짜"

소름 돋는 이야기지만 적어도 친하게 지내는 언니들 중에는 그런 언니 없…으리라 믿고 일단은
방부터 치운다. 그 이야기 들은 이후로는 왠지 정말 방 청소를 열심히 하게 된다. 그런 년 되면
진짜 어떡해? 그냥 확 죽어버리는게 낫지.

배고프고 속쓰린데 일단 청소부터 하노라니 또 문자가 온다. 확인하기 귀찮아 일단 청소기부터
돌리다가 슥 문자를 확인하니

[ 아 못 배운걸 어떠케 말만 통하면 돼지 안 그러ㅎ냐 너만 잘 알아멱음 되 ]

픽 웃음이 나온다. 아 웃으면 안돼. 자꾸 정주면 안 돼. 이렇게 후진 아저씨랑 엮이면 좆 돼.  
딱 그냥 비지니스야 비지니스. 그렇게 맘 먹기로 하고 일단 츄리닝 갈아입고 머리 말린다.

'운동 가야지'

요새 운동을 안 갔더니 안 그래도 아랫배에 살이 붙는 거 같아 신경이 쓰인다. 소라 언니가 항상
주의주는게 그거다. 몸매 관리, 방심하다 훅 간다고. 그런 말하는 사람 허리가 24니까 허무하고
막연하게 느껴지지만 어쨌거나 그 언니 말대로 암만 힘들어도 하루에 런닝머신 30분씩은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하'

이러고보니 나 의외로 되게 착실하게 살고 있는데? 맞어 그리고 저번 달에 드디어 통장에 돈
천만원을 모았다. 앞으로 딱 천만원만 더 모아서 이 일 관두고 새출발할 생각이다. 뭘 할지도
아직 안 정했지만. 가영이는 맨날 입버릇처럼 네일샵이나 내자고 하는데 난 손재주가 없어서
아마 안 될거야…

그냥 솔직히 시집이나 가고 싶지만 갈 사람이 없다. 그 순간 한명이 떠오르면서 또 휴대폰으로
시선이 가지만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 혼자 실없이 한참을 웃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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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2 22:13 2012/03/2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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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낮잠을 자다가 악몽을 꾸어 어벙벙한 머리로 화들짝 놀라 깬 박지성 상무.

"어…음. 어후, 뭔 이런 꿈을 다 꾸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무거운 몸으로 세수부터 하고 나니 좀 진정이 된다. 어휴 그냥 요새 이래저래 신경쓸
일이 많아서인지 별 황당한 꿈을 다 꿨다. 시계를 보니 1시, 점심이나 먹자 생각하고 있노라니 왠일로 박스
한테 전화가 왔다.

"아 여보세요? 어 간만이네. 요새 잘 지내지?"

반갑게 맞이하는 전화에 절로 웃음이 허허 나온다. 새끼, 실실 쪼개기는.

"어 뭐, 나야 똑같지. 무슨 일 있어? 어?"

이게 뭔 소리야.

"안 좋은… 이야기가 있어? 어 잠깐만. 확인 좀 해보고. 어 내 컴퓨터 켜고 다시 전화할께"

스박이 말로는 요즘 야구장 후기 중에 좀 거시기한 내용이 있단다. 신경 좀 써야할 거 같다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솔직히 영업 생활 20년 차에 최소한 그 문제로 욕 먹은거 없다는게 자부심인데 이건 또 뭔 소리야.

'음'

초조하게 부팅되는 것을 기다리다 서둘러 박스의 블로그에 접속한다. 야구장 글을 슥 몇 개 살펴보다보니
어, 댓글이 달린게 보인다. 찬찬히 읽어보노라니… 허허.

'흠…'

아무래도 한 분은 웨이터 팁 주는 문제로 착각하신 거 같구마이. 웨이터들도 어차피 팁으로 먹고 사는
놈들이다보니 손님이 있으면 몇 명이 드나들면서 어떻게든 담은 만원이라도 팁을 챙겨받고 싶어하는데
이거는 베테랑 같으면 한 명 싹싹한 놈한테 만원 쥐어주면서 먼저 다른 웨이터들 알랑거리지 말라고
넌지시 눈치를 주면 되는 문제인데… 저번에 박스가 그런 내용으로다가 한번 쓴 거 같기도 한데 뭐 그리
모든 사람이 다 꼼꼼히 읽지야 않았을테니.

"아 근데 이거 뭐라고 설명을 해야되나…"

머리를 긁어가며 찬찬히 댓글을 달아놓는데 이게 제대로 설명이 됐을랑가 모르겠네. 어쨌거나 뭐 이건
경륜을 쌓다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이긴 한데 아 모르는 손님 입장에서야 억울하기도 할 문제
겠고만 싶기도 한 것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담에는 이 부분을 잘 설명해서 요령있게 대처하게끔 도와
드려야겠고만. 오케이 오케이.

영업생활 20년… 아 꼭 이 일로만 그런 것은 아니고 뭐 하다보니 여자처자 이 바닥 일을 하게 되었다만
결론은 뭐 항상 마음을 열어놓으면 될 일인 것이다. 이쪽에서도 할 말이 있기야 하겠지만 손님이 아니다
하면 아 그 부분을 알겠노라 하며 좋게좋게 체크를 해두면 다 결국에는 그게 득이다, 라는게 지론이다.
사람 생각하는거야 다 거기서 거기니까.

"근데…"

그 다음이 조금 거시기하다. 손님들이야 이래저래 불만이 있을 수야 있지만 이건…


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웅-

"아 여보세요?"

박스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댓글은 확인해봤냔다.

"어어, 확인해 봤는데, 아 근데 이거는, 어… 구장비랑 뭐 이런 거는 우리는 따로 안 받거든? 첨에 견적
내가지고 8시 이전에 스물일곱장 이후에 스물아홉장 뭐 이래가지고 받고나면 그게 끝이란 말이야. 근데
야금야금 뜯어갔네 어쩌네 이러시는데 아 이거는 손님한테 웨이터들이 가서 팁 받아가는거, 그거거든.
그러니까 이거는 한 명만 딱 팁 주고 '아 여는 이제 다른 웨이터들 필요없으니까 팁 받아먹을라고 뭐
그러지 말라하고 삼촌만 왔다갔다 하면서 딱 전담으로다 잘 해달라'고, 그러면 되는거거든? 아 그리고
좀 독할 거 같으면 나중에 나중에 하면 되는건데…"

하지만 박스는 "첨 가시는 분이나 아니면 다른 데서 놀던 분들은 그런거 잘 모를 수도 있으니까, 될 수
있으면 박 상무님이 신경 좀 써주세요. 다른 손님들도 아니고… 다 그래도 애정을 갖고 찾는 분들인데"
하고 좋게좋게 부탁을 한다. 아무렴.

"아 그럼, 그거는 내 항시 신경을 쓰지. 그럼. 여기가 입소문으로 먹고 사는건데. 아 그래서 지금 나도
이거 댓글보고 깜짝 놀랜거야. 다른건 몰라도 내 그거는 진짜 신경쓴다. 말 한 마디를 해도 더 사근사근
할라고 하고. 뭐라도 더 챙겨드릴거 있으면 알게 모르게 챙겨주고. 여튼 내 더 신경 좀 쓸께"

그렇게 대답을 하노라는데 아, 그냥 넘어갈 뻔 했네.

"아 근데 그, 다른 상무가 좋다느니 하는 댓글 말이야… 아 나는 그게 좀…"

소올직하게 말해서, 아 이 댓글은 좀 거시기한게 있다. 영업생활 몇 년 차인데 다른 상무랑 비교하는
손님은 들어본 적도 없다. 하다못해 좀 큰 미용실을 가도 담당 선생님이 맘에 안 들면 그냥 그 가게를
다른 가게로 가고 말지 선생님을 바꾸나? 보통은 안 그런단 말이다. 내상을 입었거나 뭐가 좀 불만이
있으면 영업상무한테 바로 말해서 시정을 요구하지, 다른 상무가 좋게 뭐 그랬다는 손님은 들어본 적
도 없거니와 좀 억울하기까지 하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아 다른 영업상무가…

아 뭣보다 요즘 얼마간은 몸이 영 안 좋아서-아 오죽하면 내가 아침에 잠을 자다가 생전에 안 꾸는
악몽을 다 꾸었겠는가- 보조를 데리고 일을 했는데 나도 나지만 걔들이 손님 막대한다는건 말도 안
되는거고… 얘들이 어떤 애들인데. 아무래도 이건 좀…

"흐음, 다른 영업상무가 남긴 겐세이 댓글 같다 이거죠?"
"고렇지"

설명을 하고 나니 박스가 먼저 맘을 대변해서 말해준다. 아 새끼, 눈치가 빨러.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다.

"아 뭐 그럴 수도 있는데, 이거 뭐 일일히 IP추적하는 것도 지랄스런 일이고, 또 겐세이라는 확실한
보장도 없는거고, 그리고 의혹을 떠나서, 한번 더 신경 좀 써주세요. 다 아시잖아요 손님들이 원하는
게 어디 한두가지겠어요? 것두 다 비싼 돈 내고 가는건데. 아시잖아요"

허허, 참.

"알았다, 내 그냥 좀 억울한 맘이 있어서 그렇지. 아 어디 내가 손님 서운하게 할 사람인가. 또 뭐
서운하다고 손님이 말해주면 내가 그거 그 자리에서 한번을 시정 안 한 적이 없다고. 바로바로 다
제깍제깍 조치해주는데 그런 소리 들으니 좀… 뭐, 여튼 내 더 신경쓸께. 아 진짜루 다른 손님도
아니고 니 블로그 보고 오신 분들한테는 내 더 신경을 쓴다니까? 빈말이 아니고. 거 내 글주변이
없어가지고 일단 얼추 댓글들 달아놓긴 했는데, 그 문제 되는거 있음 바로바로 꼭 말해주고. 으이,
밥 먹었냐? 어, 그래, 그럼 뭐 조만간 술이나 한잔 하자. 뭐 땡기면 바로 오늘 내일이라도 가게나
함 들리고? 됐어? 허허, 알았다. 그럼 쉬어라"

전화를 끊고 한숨을 후 내쉬고는 냉장고를 열어 물 한 모금을 마신다. 그래, 뭐 초심이라는 생각
으로 더 신경 좀 써야지. 어우 밥이나 먹고 출근이나 해야겠다. 아 출출하다. 뭐 먹을거 있나…

박지성 상무는 주린 배를 욺켜쥐고 거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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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6 02:00 2012/03/06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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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야, 블라인드 좀 걷어봐"

보배는 안대도 벗지 않은 채로 말했다. 옆에 누운 영지는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말했다.

"어후, 언니야 나 지금 못 일어나겠어. 왜?"
"언제까지 잘거야 일어나야지"
"아우 나 더 잘래. 블라인드 걷지마라"

보배는 안대를 벗고 몸을 일으켰다. 어제 정말 하드코어하긴 했다. 정말로 간만에 진짜로 잘 노는 젊은
오빠들이 왔는데, 지금까지 야구장에서 일한 것 중에서 제일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게다가 그 판이 끝
나자마자 연짱으로 한 탕을 더 뛰었는데 이번에는 만땅 술을 들이붓는 진상 노땅들이라서 어쩔 수 없이
제법 많이 마셨다. 간만에 몸이 다 쑤셨다.

나름 이 바닥에서 닳고 닳은 본인이 그 정도인데 새로 일 시작한 영지는 그대로 들여보냈다가는 술은
둘째치고 일에 질려버릴까 걱정이 되어 오지랍을 떨어 집으로 데리고 왔다. 다시 한번 기지개를 펴는데
정말로 몸이 쑤신다. 휘청이는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가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마셨다. 지금 마시는 물
이 술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붕 뜨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아무래도 오늘은 하루 쉬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하며
냄비에 물을 올렸다. 찬장을 열어서는 미역을 꺼냈다. 다시 방으로 와서 영지의 이불을 덮어주었다.

'흠'

원래는 키스방에서 일하던 애라고 했다. 대학 다닐 때 돈 많은 아저씨랑 어울리다가, 흔히 부성애 못
느끼고 자란 애들이 그렇듯이 중년남자한테 이끌려서, 적당히 경제력 되는 아저씨들한테 빠져서 정신
못차리다가 씀씀이도 정신 못 차리게 커져서 헛지랄 하다가 결국 스폰서 떠나고 카드값 못 막고 무너져
버린 흔한 케이스였다. 키스방에서 일하다가 아무래도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오피쪽에서 잠깐 일하다가
삼촌들이 너무 짜증나게 굴어서 마침 손님으로 온 영업 상무 하나를 통해서 야구장으로 점프했다고.

'으휴'

일단 얼굴도 이쁘고 몸도 이쁘고, 어제보니 나름 술도 잘 마시는 것 같으니 잘만하면 잘해나갈 것 같기도
했다. 벽의 시계를 봤다. 벌써 오후 2시다. 몇 시간을 잔 거지. 그보다 밑이 아직까지 얼얼하다.

'아흐'

일단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니 보배는 다시 싱크대로 나가갔다. 담배가 땡긴다. 일단 끓는 물에 대충
다시다와 간장만 조금 넣고 바로 미역 투하. 귀찮게 정석대로 요리할 정신머리는 없다. 허리에 한 손
을 얹은 채 나무 주걱으로 몇 번 휘휘 젓다가 불을 껐다.

'얼마만에 이 집에 다른 사람이 와서 자는거지'

한 6개월쯤 되는 것 같다. 일단 그렇게 불을 끈 그녀는 국그릇 두 개에 미역국을 퍼담고, 햇반 하나를
뜯어 반반씩 나눠서 말았다. 냉장고에는 김치도 없다. 쟁반에 그 국그릇 두 개와 숫가락 두 개, 물컵
에 물 하나만 담아 방으로 가져갔다.

"영지야, 이제 일어나. 밥 먹자. 하루종일 잤어. 속 버려, 일어나"
"음…"

보배의 말에 영지는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 안대조차 더듬더듬하며 벗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잠시 미소 지은 보배. 그리고 문득, 만약 자신이 가정을 꾸렸다면, 그리고 나중에 그 딸이 큰다면 꼭
지금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곧 그런 기억은 털어버렸다.

"음"
"맛있냐?"
"언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

영지의 물음에 보배는 빵 터져서 "아 됐어. 말하지마" 하고는 계속 웃었다. 영지도 한참을 웃다가 "아
배아퍼, 아 어제 나 너무 웃었나봐요. 지금도 배가 아퍼" 하고는 배가 땡긴다는 듯이 배를 문질렀다.

"농담이야 언니 맛있어"

그리고는 계속 미역국을 먹었다.

"나, 아침 챙겨먹는거 얼마만인지 몰라요. 언니는 맨날 이렇게 먹어요?"
"아니, 나도 안 먹어. 근데 오늘은 너 곤히 자길래 나가서 먹자고 하기도 뭐하고, 나도 귀찮고 해서
그냥 있는 걸로 한거야. 근데 어디 오늘 출근은 하겠니? 몸 찌뿌둥해서"

하지만 영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해야죠. 돈 벌어야지"
"으휴, 그래 돈 벌어야지"

영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보배도 억지로 미역국을 입에 밀어넣었다. 영지는 보배에게 말했다.

"근데 어제 그 오빠들이요, 뭐하는 오빠들이래요? 호빠들이죠?"
"글쎄, 말 안 하던데. 근데 내 보기에는 호빠는 아닌 거 같은데. 그쪽 느낌은 아니었어"
"그럼 연예인 지망생 뭐 그런 애들인가?"
"그런가? 몸도 디게 좋고 노래도 진짜 잘 부르고. 정말 잘 놀던데"
"그쵸? 아 정말 맨날 그런 손님만 오면 돈 안받아도 일할 수 있을텐데"

하지만 보배가 "정말로?" 하고 묻자 영지는 "음, 솔직히 공짜는 오바고, 반값?" 하며 혀를 내밀며
웃었다. 일단 둘 다 밥을 다 먹자 보배는 쟁반에 그릇을 담아 내가며 말했다.

"일단 피부 맛사지부터 하러가자. 너 오늘 얼굴 많이 부었어"
"정말요?"
"어, 가서 맛사지도 받고 그러지 뭐"
"네"
"일단 먼저 씻어. 칫솔은 거기 선반 안에 보면 일회용 몇 개 있을거야"
"네에"

영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배는 문득 다른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도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덜 외로울 것도 같고, 월세도 굳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까지나 영지가 같이 산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지만'

일단 어쨌든 그건 이따 생각할 이야기고 설거지 마치고, 출근 준비부터 하자. 오늘도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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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6 04:27 2012/02/26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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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메이크업 중인 다은의 옆에서 유리가 물었다.

"언니, 혹시 돈 좀 있어?"

뷰러로 눈썹을 짚던 다은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어"

다른 것은 몰라도 돈 문제에 관해서는 피차 칼 같은게 좋다. 아니 굳이 몸 팔고 술 마셔 몸 상해가며
여기서 일하는 이유가 다 무엇인가. 돈 때문 아닌가. 게다가 이 바닥에서 돈 문제로 엮였다가 좆 된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서로 힘든 처지에 동병상련으로 피붙이처럼 친해진 사이에 돈 빌려줬다 싹
털리고 병신 소리들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낙담한게 분명한 표정이지만 유리는 애써 서운한 표정을 감추며 "언니 오늘 화장 되게 잘 먹었다"
라면서 더 들이댄다. 다은은 픽 웃더니 물었다.

"뭐 땜에 그런데. 빽이라도 질렀어? 정 급하면 가게에 말해서 일수라도 땡겨쓰면 되잖아"

요즘 업계 추세처럼 야구장도 언니들에게 급전을 빌려줄 때는 마이킹보다는 일수쪽을 선호했다.
에이스급이라면 또 모를까, 안 팔리는 언니들 붙잡고 있어봐야 도움도 안 되고 괜히 큰 돈 내줬다
떼먹히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일수로 자근자근 갚아나가는 쪽이 가게 입장에서도 차라리 마음이
편하고 또 언니들도 더 열심히 일하게 되니까.

하지만 유리는 대답 대신 그냥 손톱 일어난 것을 다른 손으로 뜯으며 "아니 그냥, 함 물어봤어" 하고
말을 돌렸다. 다은은 왠지 좀 짜증이 났지만, 아 지가 됐다는데 그냥 신경 끄기로 했다. 유리 말대로
오늘은 왠지 화장이 되게 잘 먹었다. 며칠 전에 홈쇼핑에서 산 조성화 루니 기초 세트가 피부에 꽤
잘 맞는 모양이다. 요즘 피부가 썩어가는 것 같아서 고민이었는데.

'좋았어'

립스틱까지 쮸왑 바르고 났건만, 그때까지도 옆에서 유리는 메이크업도 안 하고 있었다.

"뭐해? 준비 안 하구. 일 안 할거야?"

유리는 그러나 대답 대신 그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말했다.

"언니 잠깐만, 나 할 말이 있어서 그래"


빈 룸으로 다은을 데리고 온 유리는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가볍게 연기를 뿜어내고 말했다. 초조한
모양인지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하아, 언니, 나 진짜 딱 500만 해주면 안 돼?"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말하는데 사정이라도 들어봐야겠다 싶은 다은은 "왜 그러는데. 이유를 말해야
대답을 해줄거 아냐. 아니, 근데 나 진짜 나도 돈 없어. 이번에 나 전세 계약 돈 올려주고 하는 바람에
나두 진짜 겨우 이번 달 생활비 밖에 없어" 하고 대답했다.

유리는 담배를 짓이겨 끄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그럼, 하아, 나 진짜 내가 이러는 애 아닌거 알잖아. 언니, 언니가 그럼 가게에 말해서 언니
이름으로 해서 돈 좀 빌려서 해주면 안 돼? 내가 진짜 다른건 몰라도 언니 돈부터 내가 먼저 꼭
갚을께. 나, 지난 달에 울 엄마 보증금 없어서 쫒겨나게 생긴거 그거 해주느라도 나도 더이상 가게
에서 못 빌려서 그래. 그리고…"

그제서야 그녀는 이유를 말했다.

"성윤이 이 새끼, 내 동생 성윤이가 사람을 쳤어. 오늘 내일까지 합의 못 보면 구속이래. 언니 알잖아.
나 이 일 하게 된거 동생 때문인거 알잖아. 동생 하나 사람답게 키우고 싶어서…"
"하아"

다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500 정도면 뭐, 해줄 수도 있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정말
등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차 서로의 처지를 잘 아는 판에 매정하게 끊어버리는 것도 힘들었다.

정말 왜들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안 풀리는 집은, 집구석에 계속 미친듯이 사고만 치고 다니는
인간이 꼭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다은에게는 엄마가 그렇고, 유리에게는 동생 성윤이 그렇다. 아는
여자를 건드렸다가 그게 꽃뱀이었던지 강간 치상 혐의로 고소까지 당하고 그 와중에 없는 살람을
탈탈 2천을 물어주고는 거리에 나앉게 생긴 것을 결국 유리가 이 바닥에 뛰어들어 간신히 막아냈는데
한번 기운 집은 계속 기울기 마련이라 결국에 그걸 혼자 다 떠안은 유리는 지금 지 앞으로 쌓인 빚만
3천이 넘는다.

'후우'

다은은 담배를 물었다.


"야야야, 아우 무슨 역병 도니? 다들 요새 왜이렇게 몸들이 안 좋대냐. 다은아, 나 좀 도와주라"

박지성 상무가 부랴부랴 다은을 발견하고는 지옥에서 구세주라도 발견한 양 손을 잡아 이끈다.

"왜? 오늘 다들 안 나왔어?"
"어어, 어후 지금 오늘 까칠한 손님들 대박 왔는데 이쁜 언니들이 오늘 죄 못 나왔네?"
"알았어 근데 오빠 잠깐만"

잠깐 박지성 상무를 잡아세운 다은은 한가지 물었다.

"오빠 혹시 요새 유리 이야기 들은 거 있어?"
"유리? 누구 유리? 아 내가 애들 이름을 다 어떻게 기억하니?"
"아 저번에 오빠한테 생리대 심부름 시킨 애 있잖아. 눈 크고"

그리고 그제서야 박지성 상무는 씩 웃는다.

"아, 걔. 어. 기억하지. 씨발, 난 진짜 이 생활 몇 년 하면서 그런 애 첨 봤다. 아 진짜 웃겨서"
"어 근데 혹시 유리 이야기 뭐 들은거 없어?"
"없어. 왜? 뭔 일 있대?"
"아니 별 건 아니구. 그냥"

하지만 박지성 상무는 바로 물었다.

"뭐, 너한테 돈이라도 빌려달래?"

박지성 상무라 바로 짚어내자 다은은 순간 놀라면서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박지성 상무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서라. 이 바닥에서 돈 빌려주면 그 돈 절대로 못 받는다. 너 그런거 모를 짬밥 아니잖어"

쉽게 버는 돈은 쉽게 나가는 법. 물론 몸 팔고 웃음 팔아 버는 돈이 어찌 쉬운 돈이겠느냐마는 그래도
분명 배운 거 없고 재주 없는 년이 몸 하나로 고 정도 돈 버는 일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일이라고 치고
여튼간에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돈에 무감각 해지는 면이 분명히 있다.

돈 1, 2만원은 돈이 돈처럼 느껴지지 않고 그냥 슥슥 지르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정말로 각 잡고 돈 딱
모으는 애들도 드물고 빚 때문에 이 바닥에 들어왔는데도 끝내 이 바닥을 못 떠나는 애들도 수두룩
하다. '자기 돈' 관리도 그 모양인데 남의 돈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는 법.

"에효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나"

하지만 박지성 상무는 다시 한번 다은에게 주의를 주었다.

"등신 짓 하지마. 남의 사정 봐주다가 좆되는 애들이 어디 한 둘 인 줄 알아? 여튼 들어가자"
"알았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이스가 투입된다고 꼭 초이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취향이란 천차만별 아니겠는가. 하지만
보통은 얼추 괜찮은 애들이 투입되면 상대적으로 나아보이기도 하고, 분위기상 에이스라고 하면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는 마음에 어지간하면 OK를 하기 마련이다. 같은 야동이라도 기왕이면 잘 나가고
이름 아는 배우 야동을 더 즐겨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후, 좋네요. 그르치, 이거죠"

역시나 대번에 손님은 다은을 마음에 들어했다. 다은은 방금 전까지의 고민 어린 얼굴은 어디갔는지
사근사근 웃는 얼굴로 "오빠 진짜 안목 있네. 야구장의 다은이, 앞으로도 꼭 지명해줘요?" 하면서 슥
손님의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다은은 2차까지 마무리 짓고 비틀거리며 휴게실로 들어왔다. 젊은 애라서 그런지, 너무 격렬했다. 이
바닥 일 하루이틀 하는 것 아니지만 이 정도는 정말 다은에게도 드문 경우다.

'그런 남자랑 결혼하는 남자는 좋기도 좋겠지만 진짜 힘들겠다'

휴게실로 들어오자 유리는 저기 구석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있었다. 얼추보니까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모양.

"유리야"

유리는 다은의 부름에 "네 언니" 하면서 일어나 다가왔다. 눈물을 슥 훔친게 아무래도 울었던 모양이다.
다은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나 혼자 500을 다 해주는건 힘들고, 일단 200을 해주고, 내가 여기저기 빌려서 500 어떻게든 맞춰볼께"

그 말을 꺼내면서도 다은은 속으로 스스로를 미친듯이 욕하고 있었다. 니가 뭐라고, 500 버는건 무슨
애 이름이냐고, 도대체 왜, 뭘 위해서, 뭘 믿고…  하지만 그녀는 또 생각했다.

'만약 딱 3년 전에 이렇게 나 도와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었더라도 내 인생은 지금과 많이 다를텐데'

그렇게 다은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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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진짜 이따위로 할래? 엉? 이건 뭐 4년차나 됐다는 놈이, 완전 개판이야? 어! 회사 놀러다녀?
내가 승질을 안 내게 생겼어?"

오부장은 잠시 영업본부에 들렀다가 저어기 구석에서 한창 깨지고 있던 최상목 대리를 보았다. 영업
2팀의 한 부장한테 욕을 먹고 있었는데, 꽤나 다혈질인 한 부장인만큼 그 나무람도 격렬해서 다른 팀
사람들이 다 민망해 할 지경이었다.

'저건 아닌데…'

최 대리가 갓 입사할 때 일 가르쳐가며 키워놓은 부하 직원인지라, 지금은 다른 부서에 가 있다고는
해도 어쨌든 마음은 썩 좋지 않았다. 그걸 떠나서 남들 앞에서 자기 부하직원을 저렇게 망신주는게
아무리 파이팅 넘치는 스타일이라고는 해도 영 보기 좋지 않았다. 일단은 영업본부장이랑 잠시 회
의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나오자 그때는 최 대리가 제 자리에 앉아있길래 잠시 커피 한잔 하자면서
최상목을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왔다.



"담배 한 대 피워. 근데 뭐 때문에 그러는거야?"
"어휴, 진짜 뭣도 아니에요. 달달 볶는거죠 뭐. 그냥 뭐 지 꼴리는대로 안 풀리면 맨날… 제가 진짜
부장님 앞에서 이런 말 하는 것도 뭐하지만, 저 요즘 솔직히 회사 관둘 생각까지 한다니까요"

분명히 오 부장이 기억하는 최 대리는, 아니 당시 말단 사원 시절의 최상목은 제법 일을 잘하는 축
이었다. 눈치 빠르고, 똘똘하고, 사람들한테도 싹싹하고. 같은 팀에서 사내 연애를 하다가 중간에
깨지는 바람에 휴직이고 뭐고 그냥 관둔다는거 겨우겨우 붙잡았는데(지방대 출신에 뭐 하나 크게
내세울게 없는 놈이 대뜸 걷어차고 나가봐야 여기만한 직장을 또 어디서 구해. 가뜩이나 나이 먹은
홀어머니 모시고 산다는 놈이 정신 못 차리고)…

도저히 그 년이랑은 얼굴 보고 같이 일 못하겠다 곤조를 부리는 바람에 '사무실 앞에만 앉아있는
것도 좀 그렇다' 라는 말에 나름 적성에도 맞을 것 같아 영업팀으로 보내준 게 정확히 2년 전.

…근데 영업팀 한 부장이 좀 다혈질이긴 해도 그렇게 앞 뒤 없는 사람은 아닌데, 그렇게까지 신랄
하게 깨지는 모습은, 음, 뭔가 잘 안 맞는건가.

"저도 차라리 이게 일적인 문제로 그런거면 아 일만 똑바로 처리하면 되는 거니까 속 편합니다.
근데 이거는… 아 진짜, 솔직히 사람이 잘 안 맞는 사람이라는게 있긴 있는 거 같습니다. 정말로
힘드네요 어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최상목 대리. 그러더니 그는 "아니, 사람이 악감정을 갖는 것도 다 이해
합니다. 사람인데 어쩌겠습니까. 그렇지만, 사적인 감정을 갖고 이런 식으로, 남들 다 보는 데서
무안을 주는 스타일은, 아 진짜 우리 팀 사람들이 다 뭐가 되겠습니까. 저는 또 저대로 뭐가 되
구요. 정말이지…아니 자기 책임까지 아랫 사람한테 떠넘기니 원" 하며 울분을 토해냈다.

흐음. 가끔 이렇게 어쩌다, 술자리나 혹은 이런 격정적인 분위기에서 진짜 속마음을 털고 다른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게되면-보통 직속 부하들은 아무리 편하게 말을 하라고 해도 못하지만-
꽤 많은 정보를 얻게된다. 물론 대부분은 상당히 각색된 이야기들이다. 자신들의 단점이나 잘못은
쏙 빼놓은 채, 그저 마냥 자기들 억울한 이야기, 기분 상한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관리직 사원들끼리 있을 때는 서로 의식하고 견제를 하다보니 얻지 못하는
'잠재적 라이벌'의 약점이라던가 다른 부서들의 속사정 등을 '그저 적당히 말을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알 수 있으니 꽤 쏠쏠한 일이다. 특히 나같은 부장급 직원은 더더욱 그렇다. 조금만
소홀해도 어느새 아랫선의 '언로'와 정보 루트마저 끊겨버리니까. 회계, 인사팀와 더불어 사내
3대 정보조직인 총무과의 수장으로서 나름 '항상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떠나, 한때 함께했던 부하직원의 괴로움을 들어주는 것은 상사로서의 도리.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지 뭐. 드러운 일 보고 겪고. 근데 솔직히 아까 진짜 좀 거시기 하두만"
"어효, 진짜 제가 뭐 아부 떨라고 하는 말이 아니고, 부장님 밑에서 일할 때 생각 많이 납니다.
진짜 구관이 명관입니다"
"하이고, 우리 성목씨, 영업팀에서 일하더니만 아부 마~이 늘었네"

참담한 처지에 빨아주는 아부지만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 그렇고 그런거 아닌가.
거기에다 사실 아까 영업본부장한테 들은 이야기는 꽤 재미나는 이야기였다.

'봄을 전후해서 또 한번의 임원급 승진 인사이동이 있을 것이며 오 부장 당신이 그 후보군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 영업 2팀 한 부장이 또 다른 후보고.'

어디서 들은 정보냐니까 어깨 툭툭 두드리며 손가락 두 개를 펴보인다. 실세 중에 넘버 투라
하면 한동진 인사본부장… 나를 밀어준 것도 그 사람이란다. 정작 나한테는 귀뜸 한번 없더니만,
뭐 예전에 차려준 강남 야구장 떡밥이 아직은 살아있다 이건가. 하여간에 그런 양반들이 은근히
그런 디테일과 기억력은 끝내준다. 어쨌건 한번 빚을 졌으니 갚는다 이건가.

그래도 한가지 미심쩍은 것은 '왜 그걸 자기 부서 사람을 젖혀놓고 나한테 정보를 주나' 싶어
직접적으로 물어봤더니 그 대답이 걸작이다.

"내 도끼라고 너무 믿으면 곤란하지. 자기 도끼에 찍혀 죽는 사람, 얼마나 많아?"



한번 미끄러져봤다. 두 번 실패하면 더이상은 분명 기회가 없을 것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기회면서
위기이기도 하다. 일단 영업 2팀 한 부장에 대해 최대한 정보를 모아야 한다. 그래야 싸울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스파이'는 눈 앞에 있지 않은가. 나에 대한 헛된 기대까지 품고서 말이다.

"저, 오 부장님. 참 같잖은 소리이긴 한데… 저 좀 다시 끌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사회생활 몇 년 했다는 놈이 사내 전보를 두 번을 하겠다니. 게다가 작년의 인사 개편 때문에
이제 더이상 본부 단위를 넘는 인사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굳이 실망부터 시킬 필요야 없지. 특히 이런 상황이면.

"에휴, 그러게 내 잘 생각하고 하라니까. 하지만 뭐 힘 써보지 뭐"

그리고 거기까지 말하자 영업 물 좀 먹어본 놈답게 바로 답례 이야기가 나온다.

"감사합니다 오 부장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뭐, 충성은 나중에 다 되면 할 이야기고, 그보다
언제 시간 되십니까? 좋은 데로 한번 모시겠습니다. 꼭!"
"아휴 우리 상목씨 이거이거 그래서야 쓰겠나? 응? 아 요즘에 그렇게 노골적으로 하는 사람이
어딨어. 한 부장한테 이상한거 많이 배웠네"

한번 튕겨준다. 그러자 상목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오 부장님. 솔직히 저도 뭐 눈치가 있고 사회생활 경험이 있는데 뭘 모르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솔직히 욱하는 마음에 관두고 나가겠다는거, 그 멍청한 어린 새끼 붙잡고 남으라고, 또 기회 주신
분이 오 부장님 아니겠습니까. 그거 제대로 답례도 못한게 죄송하고 그랬는데 그거 한번 갚는 셈
치고 하겠다는 이야기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아 자꾸 이러실 겁니까? 부장님하고 제 사이에?
삼촌 조카 같은 사이 아닙니까? 하하 참"

정말 쭈삣대던 대딩 같은 때가 엊그제 같인데 정말 너스레가 많이 늘었다. 으이구 그래 좋다.

"그래 알았어 알았어. 근데 영업팀 자주 다니는 가게들은 위험해서 좀 그렇고, 그럼 내일, 금요일에
어때? 선릉에 좋은데 있는데"
"선릉 어디 말입니까? 혹시 야구장?"

어이쿠.

"알아?"
"아 주대리 따라서 몇 번 가봤죠. 하하, 거기 물 좋죠"

이거여 원, 주영삼 이 새끼 회사 사람 다 데리고 다닌거 아닌지 몰라.

"하, 그려그려. 그럼 내일 뭐…"
"알겠씀다. 제가 거 강남야구장, 박지성 상무한테 연락해놓겠습니다"
"번호 있어?"
"지난 주에도 다녀왔거든요"
"이야, 이거 민망하게스리 뭐 우리 다 형제구만 형제야"
"제가 그래서 그러지 않았습니까. 저랑 부장님은 삼촌 조카 같은 사이라고"
"참나, 몰라. 여튼 내일 보자고"
"예예, 내려가시죠"

오 부장은 힘찬 콧바람을 뿜으며 옥상 벤치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임원을 향한 또 한번의 큰 야망의
기회가 찾아왔다. 내일, 간만의 오입질 기회도 함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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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6 23:11 2012/02/1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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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에는 대동소이하지만 어쨌거나 일주일 중 야구장 최고의 대목은 역시나 금요일이다. 주말을
앞두고 적당히 마음이 들뜨는데다 그것도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또 여자를 꼬셔서 뭘 어떻게 해보려고
생각하니 귀찮기도 귀찮을 뿐더러 어디 작업건다고 꼭 성공하라는 보장이나 있는가? 돈은 돈대로 쓰면
서 말이다. 그게 뭔 지랄인가. 차라리 딱 돈 쓸만큼 쓰고 확실하게 재미나게 노는게 낫지, 싶은거다.

게다가 아가씨들 역시 주말을 앞두고 좀 더 기분내기 좋다보니 왠지 더 힘을 줘서 꾸미는 언니들이 많고
그러다보니 금요일의 야구장은 왠지 미묘하게 다른 날보다 더 긴장되고 분위기도 좋은, 그런 '들뜬' 분
위기가 절로 연출이 되는 것이다.

"흐흐"

오늘 박지성 상무는 아침에 면도를 대충 했더니 턱에 한 가닥 좀 기다랗게 턱수염이 자꾸 성가셔서 살살
만지고는 있는데 어째 쑥 뽑히지를 않아 성가시지만 계속 그렇게 만지작 거리고 있노라니, 옆에서 은주가
그 큰 가슴을 출렁출렁 흔들거리며 다가온다.

"이야, 새삼스럽지만 가슴 정말 죽인다"

새 홀복인지 못 보던 옷인데, 정장 스타일이면서도 깊게 가슴이 패어서 진짜 쌕한 것이 참 간만에 군침
돌게 만든다. 은주는 피식 웃더니 "어머, 만져볼래요?" 하고 가슴을 이리 들이민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이라도 물고 빨고 하고 싶지만 영업 전에 지랄 떨 생각은 없다.

"근데 아까 걸어올 때 보니까 어째 살 좀 빠진 거 같다?"
"그래보여요? 나 사실 요새 다이어트 하잖아"

은근슬쩍 친한 척 말을 놓는 은주. 흐, 귀여운 년. 나랑 친하게 지내는 다른 애들 보고서는 지도 나하고
적당히 친한 척 하고 싶은데 왠지 눈치만 살살 보더니만. 뭐 그래 친구 먹어준다. 나도 이렇게 미친듯이
붙임성 좋은 애들은 좋다.

"뭔 다이어트?"
"술 다이어트"
"그러다 위장 빵구난다"

그러고보면 새삼 신기한 것이, 정말 죽을 둥 살 둥 나름 최선을 다해 살빼고 운동하는 애들도 결국에는
몇 달 단위로 살이 붙는 애가 있는가하면, 맨날 일 끝나고도 꼭 뭐라도 먹어야 되는 그런 식탐 끝내주는
데도 항상 마른 애들이 있다.

"솔직히 우리 일 하는데 살 찌는 애들은 뭔가 문제가 있는거야. 그렇게 땀을 흘리는데"
"야, 니가 그렇게 땀을 흘릴 정도로 열심히 한다고?"
"아 나야 이미 테크닉이 끝내주니깐 그런거고, 다른 애기들 말이야"
"뭔 테크닉은"
"나 끝내줘 진짜루"
"에휴"

박지성 상무는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차에 노트북 가지러 간다. 차에서 일 좀 해야지"
"근데, 그거 효과 있어? 인터넷에서 정말 그걸 보고 와?"

어느새 담배를 꺼낸 은주에게 "담배 하나 줘봐" 하면서 한 개피를 얻은 박 상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대신에 빡세게 해야돼"



비는 시간 동안 짬짬히 노트북으로 몇몇 사이트를 돌면서 홍보글을 올린다. 실제로 효과가 얼마나 있는
지는 세상 아무도 모른다. 당장 나부터가 그런 글 보고 누가 연락을 할까 싶긴 한데… 생각보다 효과는
있는 느낌이다.

'이거봐라 이거 봐'

검색어 상위 노출을 위해 블로그에 온갖 태그와 인기 검색어로 범벅을 해서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게시물을 짜깁기 해서 올리는 영업상무들이 그득하다. 물론 박지성 상무 본인도 몇 개는 그런 내용을
버무려 놓은 블로그가 있긴 한데, 내 보기엔 그런 걸로는 효과가 쥐뿔 없다. 그냥 사람들 많이 다니는
커뮤니티에 언니들 사진 올리고-물론 차단 확률도 높지만- 홍보글 올리고, 마냥 홍보글만 올리는게
아니라 좀 어울리기도 어울리고 뭐 그러다보면…

'연락은 온다'

아주 드물게 정말 이런거 처음인데 호기심 반 성욕 반으로 찔러보는 사람이 있고, 한두번 우연찮게 남
따라서 갔다가 대뜸 그게 땡겨서 인터넷에 '풀싸롱' 검색어로 뒤져서 걸리는대로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미 '꾼'인데 다니는 업소 좀 바꿔볼까 하는 마음에 다른 데 수소문하다가 연락 하는 케이스도
있고. 뭐 생각해보면 온라인 홍보라는게 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거기에다'

빡스 블로그에서 그 소설 보고 찾아오는 사람도 제법 있고. 후후. 담배나 태울까 하는 생각에 차창을
조금 여노라니 저기서 또 누구 둘이 싸운다. 하나는 소영이고, 하난 잘 모르겠네. 당연히 끼어들 생각은
없고 그저 간만의 구경거리려니, 하는 마음으로 숨 죽이고 조용히 쳐다본다. 잠시 먹먹해졌다 그녀들의
말소리가 조용한 골목길에 웅웅거리면서도 나름 잘 들린다.


"뭐하자는건데 지금?"
"참, 지금 몰라서 그래?"
"몰라서 그래…? 너 말이 좀 짧다? 야, 너 지금 뭐하냐? 어?"
"언니면, 언니대우 받고 싶으면 처신 똑바로 해. 딱 말해. 승우 오빠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승우? 야, 니야말로 승우를…"

에효 씨발. 뭐 재미나는 껀수나 있나 했더니 안 봐도 비디오네. 삼각 관계에 기집 둘이 푸닥질 하는
븅신 꼬라지는 보고 싶지도 않다. 차창을 다시 올렸다. 참 기가 차는게, 하여간 웃긴 것이 삼각관계면
남자 새끼 자지를 걷어차고 관두면 될 것을 꼭 지들끼리 한번 더 쇼부를 친다. 누가 꼬리를 쳤네
어쩌네 하면서. 아 그렇다고 그 남자가 그렇게 매력있게 생긴 놈인가 하면 것두 아닌데 말이다.

'니꺼 내꺼 싸움이겠지'

그래봐야 그 새끼한테 니네들은 그저 밑구녕이 전부여, 하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거 말한다고 어디
통하기야 하겠는가. 그저 다시 야구장까페 고객관리나 하러 로그인을 하는데…

"야아아아아!"

허허. 급기야 둘은 빽 소리를 지르고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여자들 싸움답지 않게 시원하게 소영의
훅이 그 상대 여자애 턱에 꽂히고, 또 이번에는 그녀가 소영의 머리채를 잡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허, 보통 이렇게까지 진행되는 케이스는 잘 없는데. 저건 재밌네.

쌍시옷과 지읏, 피읖과 개, crazy, 여성기, 죽음, 남성기, 안구 등 다양한 어휘가 동원된 저렴한 고함
끝에 곧이어 일 봐주는 삼촌들과 웨이터 몇 명이 어떻게 알고 또 뛰어와 뜯어말리며 상황을 정리한다.

"에이그"

다시 가게 안에나 들어가야겠다, 하는 마음에 노트북을 접노라니 바로 영업용 폰으로 연락이 온다.
박지성 상무는 살짝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강남야구장 박지성 상뭅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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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8 01:04 2012/02/08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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